서른 시작

내 나이 서른.

꿈이 생겼다. 아니 잊었던 꿈이 생각났다는 게 더 맞는 표현하는게 더 맞는지도 모른다. 미국에 와서 참 많은 일들을 하고 살아가면서 가끔은 ‘그냥 이렇게 하면 먹고는 살겠네.’ 싶어서 안주하려고도 했었다.

한국이랑 좀 달라서 미국은 중박만 치면 먹고는 사는 것 같다.
물론 쉽진 않지만 머라도 하면 굶어죽진 않는다. 한국도 마찬가지겠지만 미국이 조금더 기회라는게 있다. 

비자가 Deny가 결정나던 날.
정말 펑펑 울었다. 반드시 나올거라고 생각한 것도 아니면서 그 많은 눈물이 어디서 나오나 싶었다. 
울면서 조금은 원망이 됐다. 아니 많이 됐다. 1년이 넘는 시간동안 고생한 내 마음한테 미안해서. 

그리고 오래지나지 않아 꿈을 발견하게 되기 시작했다. 
하나님은 늘 유머감각이 뛰어나시고 반전이 있으시다.
하나씩 알려주셨다. “주연아. 이건 어때? 하고 싶어했었잖아? 응? 너 이거 잘하잖아. 해봐~ “

취업비자를 진행하던 회사에서는 어카운팅으로 일하고 있었다. 나와 맞지 않는 일이라는 건 잘 알았지만, 그냥 좀 편하게 할 수 있는 일이긴 했다.
꼼꼼하지 못한 것에 스트레스는 받았지만 딱히 일처리가 어려워 못하거나 하진 않았다. 

그래도 늘 지겨워하고 재미없어했다. 
비자도 안됐는데 일단 발걸음을 내딛어보기로 했다. 
틈틈이 회사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일단은 그냥 옮기는 게 목표였다. 일자리를 찾기 시작했고, 조건은 파트타임 일주일에 3일가고 지금 받는 정도면 충분했다. 
하고 싶은 일은 사진찍는 거나 아님 프로그램을 좀 만질 수 있는 곳이었으면 했지만 고집하진 않았다. 다른 회사 어카운팅이라도 괜찮았다. 많이 찾기는 했는데 이력서를 보낼 만큼 내 이목을 끌지는 못했다.

비자가 안되자 마자 떠났던 뉴저지 여행에서 돌아온 날 일하면서 너무 피곤하고 하필 그날따라 회사 사모님이 스트레스를 퍼부으셔서 위로삼아 또 일자리를 검색했다. 그날 참 말도 안되게 올려놓은 구인광고를 봤다. 

대충 미디어 회사인 것 같았는데 말장난같은 구인광고. 대충 내용은 포토샵 좀 할 줄 알고, 사진 좀 찍을 줄 알고, 컴퓨터 좀 고칠 줄 알고, 웹사이트 만들 줄 알고 장거리 운전가능한 사람을 뽑는 말그대로 깍뚜기 같은 직무였다. 보면서 “딱 난데?” 하고는 그 광고 보자마자 바로 이력서를 업뎃하고 보냈다. 
그리고 또 바로 이어진 인터뷰.

인터뷰를 보러가기전에 김칫국을 세사발정도 마셨다. 
이미 인터뷰를 보러 가기 전에 다른 옷 회사 사진 촬영 offer를 받은 상태였다.
근데 김칫국 마신 김에 미디어 회사에 갈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일단 받은 offer를 보류 했다.

미디어 회사에 갔는데 첫 마디가 사실은 남자를 찾고 있다고 했다.
뚜둥. 에고. 아니구나 싶어서 정신 놓고 인터뷰를 봤다.

이후 질문이 이런거였다.

Q. 우리 티비같은 거 옮겨야 하는데 괜찮아요?

A. 저 예전에 택배회사에서 일했어서 한손으로도 옮겨요.

Q. 샌디에고까지 당일로 가기도 하고 운전을 많이 해야할 수 있어요.

A. 저 뉴욕에서 여기까지 혼자 운전해서 왔어요.

Q. 사진, 영상 찍고 보정할 일도 있을 거예요.

A. 사진은 10년 찍었고 왠만한 프로그램은 눈감고 합니다.

Q. 웹사이트 만들줄 아나요?

A. 만들수는 있지만 혼잔서는 안되요.

Q. 외주 아니면 인하우스에서 하려면 혼자 해야할텐데…

A. 독학하겠습니다.

인터뷰 내내 사장님과 부사장님은 웃겨 죽으셨다.
나도 내내 웃으면서 장난가득한 대답을 진지하게 하고 3일 이내로 답변 준다는 이야기를 듣고 집으로 왔다.

어차피 남자 직무라는데 안되겠거니 하고 offer 받은 회사랑 이야기하고 이었는데 답이 왔다. 엄청난 경쟁자를 뚫고 뽑혔다며. ㅋㅋㅋ
그냥 너무 웃겼다.

이렇게 내 광고 회사 직무 아니 잡무가 시작되었다.
정해진 파트타임 금액에 무급 야근을 밥먹듯이 하게 된 시점.

많은 선택들이 모여 지금의 내가 되고 쌓은 것 만큼 보여주게 될 기회가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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