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CLA HARBOR ER

ER을 정말 오랜만에 갔다.
보호자로서 방문은 처음.
사실 전에 내가 아파서 갔을 때의 기억은 거의 없다.
희미한 병원 문, 차가운 침대, 따끔한 주사 바늘 등.
이미지로 된 기억만 남아있다.

엄마가 설거지 하시다가 칼에 베였는데 피가 많이 나서 손으로 지혈하고 있다는 전화에 회사에서 급하게 집으로 왔다.
병원가자고 했더니 괜찮아질 것 같다고 해서 일단 CVS에 가서 지혈제를 사왔다.

한국에는 가루같은게 있었던 거 같은데 여기는 spray랑 신기하게 생긴 반찬코 같은 게 있었다.

약 뿌리려고 손을 떼는데 흉터가… 흐엉.
spray는 열심히 뿌려도 별 반응이 없어서 신기한 반찬코를 붙였더니 지혈이 되는 것 같았다.

일단 지혈은 했는데 아무래도 상처를 봐서는 꿰매야 할 것 같아서 결국 ER로 갔다.

병원 주차장은 역시.
빙빙 돌다가 겨우 주차하고 들어가서 register하고 앉았다.

역시 ER walk in은 먼가 느긋해 보인다.

프로세스 한 단계마다 시간이 30분씩 지났다. 
Register 하고 30분,
간호사 만나 상황 설명하고 30분,
의사와서 다음 프로세스 가는데 30분,
엑스레이 찍는데 30분,
다시 의사 만나는데 30분,
의사가 치료하기 시작하는데 30분,
치료가 다 끝나고 instruction 받는데 30분

이렇게 5시간 만에 ER 치료 마무리.

치료해준 의사가 참 예쁘고 바이브가 좋았다.
그래서 기나긴 기다림도, 중간에 만났던 Billing Department 아줌마의 기분 나쁨도 좀 보상이 된 것 같았다.

나중에 추천인 쓸 수 있는 게 있으면 꼭 적어주려고 의사 이름을 메모해 두었다.

꿰매주면서 자기도 같은 자리에 상처 있다면서 보여줬다.
베이글 먹다가 그랬다고 하면서 popular spot이라고 한바탕 웃었다.

그렇게 치료를 잘 마치고 instruction을 받고 나왔다.
ER Billing은 나중에 청구서가 집으로 날아온다.
Billing Department에 전화해서 어떻게 처리할지 도움을 받으라고 했다.
전화 안하면 엄청난 Bill을 받게 될 거라고 하면서.

안 아프다고 괜찮다고 하는 엄마를 보는데 너무 속상해서 화가 났다.
엄마도 나랑 언니를 키우면서 어디서 다치고 오면 마음이 이랬을까 싶었다.
내가 부모가 안되어봐서 그 마음을 다 헤아릴 수는 없지만,
왠지 비슷한 마음이 아닐까 싶다.

엄마가 한국 가기 일주일 전 Bill이 올 때까지 기다릴 수가 없어서 병원비 처리를 위해 전화를 했다. info를 줬더니 병원비를 이야기해줬다.

그냥 살짝 꿰맸을 뿐인데 무려 $5,000.00 이 넘게 나왔다.
미국이 그렇지 머.
엄마는 환전하면 은행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보험이 있었는데 엄청 좋은 거라고 했다. 세부 내역을 확인해보니 사망 보험금이 많아 보일 뿐 치료비는 $1,000.00 밖에 안됐다. 이게 말이 되나 싶어서 재차 확인했는데 맞았다.

병원비 딜이라면 난 진절머리가 난다. 편두통 때문에 의지와 상관없이 병원 갔다가 몇 만불 병원비를 짊어져야 했기에 정말 수없이 딜을 했다.

처음엔 그 과정을 또 거쳐야 한다는게 너무 싫어서 나도 모르게 엄마한테 화를 냈다. 그리고 생각해보니 ‘엄마도 무섭겠다’ 싶어서 바로 “엄마 걱정마 내가 해결할게. 안되면 내가 돈 내줄게. 걱정하지마.” 했다.

엄마랑 다시 병원에 갔다. 물어물어 가라는 곳에 가서 이야기했다.
엄마는 2일 후면 한국으로 돌아가고, 돈이 없다고 했다.
엄청 긴장해서 갔는데 상담하는 사람이 참 친절하게 소상히 물어보더니 도움 줄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다고 설명해주고 $1,000 이하로 조정해 주었다.

이 Bill 이 final 이냐고 몇 번을 재차 묻고는 고맙다고 너무 고맙다고 하고 나왔다.

엄마는 순간 눈물까지 보였다. 상담 해준 선생님이랑 기념 사진도 하나 찍고 나와서 엄마한테 물었다.

“왜 울어? 잘됐는데~” 했더니 엄마는 내가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를 했다.

“엄마는 네가 있어서 이렇게 해결해줬는데 너는 혼자 였자나. 미국에 혼자 살면서 이렇게 해결해가면서 살았을 거 생각하니까 속상해. 엄마가 전화로 들으면서 힘들겠다고 생각만 했는데 직접 겪고 나니까 너무 마음이 아파.”

순간 나도 울어버렸다.

지난 시간 속에 내가 떠올라서, 그리고 지금까지 살면서 부모님이 보호해주신 것들이 더 깊숙히 다가왔다.
엄마, 아빠도 다 처음이었을 텐데 우리 키우면서 얼마나 어려울 때가 많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미국 올 때 이렇게나 내 인생을 책임져야 하는지도 모른 채 왔는데 나 하나 책임 지는 일이 얼마나 무거운지 알게 됐다.

엄마 사랑해.

Leav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