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권, 두번째 인터뷰

포스팅을 할까 말까 고민하면서 적어본다.
살짝 예민한 문제일 수도 있고, 아직 결과가 나오지 않은 진행 중이기에 더 조심스럽지만 혹시 모를 누군가가 글을 통해 도움이 될 수도 있기에.

미국 취업 영주권 3순위.
유난히 운을 요리조리 피해다니며 진행이 됐다.
시작은 참 좋았다.

정권이 바뀌기 전이라서 운만 잘 타면 기록에 남을 만한 속도로 받을 수도 있겠다는 기대를 한껏 받았다.

# 타임라인

– 2015년 9월 14일 변호사와 취업이민 수속 시작
– 2015년 11월 17일 Prevailing Wage Acknowledgement Letter 및 광고 절차 마무리
– 2015년 11월 20일 Perm. (노동허가) 신청
– 2016년 4월 19일 Perm. Audit
– 2016년 6월 30일 Perm. Audit certify
– 2016년 7월 28일 I-140 급행 & I-485 신청
– 2016년 8월 11일 I-140 승인
– 2016년 8월 17일 Finger Print – notice를 못받아서 실제로는 10월 12일 finger print
– 2016년 9월 16일 Combo card (Working permit & Travel permit) 발급
– 2017년 6월 15일 Combo card 연장 신청
– 2017년 10월 2일 I-485 Interview
– 2017년 11월 7일 Request for evidence notice
– 2017년 12월 14일 Request for evidence 서류 최종 제출
– 2018년 7월 5일 이직서류 (I-485J) 신청
– 2018년 7월 5일 Combo card 연장 신청
– 2019년 5월 24일 Combo Card 연장 신청
– 2019년 5월 31일 I-485J 승인
– 2019년 7월 1일 I-485 서류 다른 오피스로 이관
– 2019년 7월 29일 I-485 ready to be schedule for an interview
– 2019년 8월 6일 Scheduled an interview for your Form I-485

# 첫 인터뷰

2017년 10월 2일 오후 12시 15분 인터뷰
사실 좋은 기억은 아니다. 아니 악몽같은 날이었다.
보통 30분 진행한다는 인터뷰는 4시간을 했고,
변호사도 내편이 아니었다.

아침 9시쯤 도착했던 거 같다.
일찍가서 주변을 좀 걸으면서 긴장도 풀어보고, 기도도 했다.

그 전날은 라스베가스에서 총기 사건이 있었던 날이었다.
TV에 온통 그 이야기 뿐이고 뉴스를 보며 속상해서 살짝 울컥하기도 했다.
다시 마음을 다 잡고 대기실에 앉아서 변호사를 기다렸다.

시간이 다 됐는데 변호사는 오질 않고,
전화번호도 몰라서 변호사 사무실에 전화했는데 점심시간이라 아무도 안받았다.
12시 17분 officer가 내 이름을 불렀다. 정말 울고 싶었다.
언능 달려가 지금 변호사가 와야 하는데 아직 도착을 못했다고 설명했다.
변호사 없으면 안되냐고 해서 내 서류가 다 변호사에게 있다고 하니
15분 시간을 줄테니 최선을 다해보란다.

5분 뒤 변호사가 도착했다. 미안하단 말도 없이.
그래서 상황설명을 하고 가서 이야기하라고 했다.

인터뷰 시작.

officer가 변호사에게 말했다.
“너 늦었네?”

변호사 답이 가관이었다.
“아니, 나 안늦었는데?”

Officer의 동공이 흔들리고 나에게 물었다.
“넌 어떻게 생각해?”

나는 민망해하며 말했다. 당신이 12시 17분에 나를 불렀는데 변호사가 도착하지 않았었다고.

이 상황에서 끝까지 변호사는 미안하다고 하지 않았다.
거기에 더 보태서 내 diploma 원본을 officer에게 주며 “You can copy this one.”이라고 했다. 엉엉.

Officer는 화를 내며 내가 다른 오피스에 있을 땐 이러면 바로 인터뷰 중단이라고 하면서 카피하러 나갔다. (츤데레 스타일)

어이없어서 변호사를 쳐다봤는데 변호사 말에 말문이 막혔다.
“아니 자기가 학교 선생이야?”

이게 불과 시작하고 5분이 채 안된 상황이었다.
여튼 그렇게 인터뷰가 시작됐고,
변호사 덕분에 내 인터뷰는 처음부터 끝까지 난항이었다.
조금만 버벅 되면 꼬투리 잡았고 대답하느라 쩔쩔 맸다.

그렇게 손을 꼬집어 가며 온 손등에 멍이 다 든 후에야 끝이 났다.
중간에 못한 말들이 마음에 걸려서 다시 요청했더니
나쁘게 대하면서도 종이 한장을 주더니 글로 적어서 달라고 했다.
손이 너무 떨려서 알아볼 수 있을지 모를 글을 한바닥 적어서 추가 제출하고 방에서 나왔다.

변호사한테 화가 났지만 일단 내 케이스를 가지고 있는 변호사이기에,
화낼 힘도 없는 날이었기에 그렇게 헤어지고,
난 차에 앉아서 한참을 울었다.
아 이제 끝났구나 싶었다.

그 이후에 타임라인에 쓴거처럼 추가 서류 요청이 왔고,
추가 서류를 제출 했고,
2년의 pending 이 있었다.
사실 추가 서류는 내가 다 준비해갔던 서류였다.
변호사가 똑똑하게 했다면 다 낼 수 있었던 서류.

그리고 뚜둥 2번째 인터뷰가 잡히고야 말았다.

그렇게 못난 변호사는 그 변호사 사무실에서 짤렸는지 그만뒀는지 사라졌고,
난 head 변호사와 연락 중이다.

회사를 옮기면서 이사를 했기 때문에
같은 건물이지만 다른 층에서 인터뷰를 진행할 거라고 했다.

사실 다시 준비해야하는 이 시점이 참 쉽지 않다.
그래도 이제 끝맺음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기대가 되면서도,
또다시 pending이 될까 두렵기도 하다.

# 영주권을 진행하면서,

인터뷰 본지는 2년, 영주권이 시작된지는 4년정도 지났다.
Audit 나왔을 때 한번 좌절했었는데 4개월이 걸린다는 audit이 2개월만에 지나고 나니 한껏 기대에 붕붕 떠 있었다.

그리고 서류를 준비하는게 힘들어서 징징대며 열심히 서류를 준비하고,
또 기다림. 기다림.

인터뷰도 보고, 시간이 지나고 중간에 회사를 옮겼다.
보통 4개월 걸린다는 485J는 11개월이 걸렸고,
485J 나오고 나면 2주 안에 승인 된다는 영주권은 소식이 없다가 3개월이 지나서야 2번째 인터뷰가 잡혔다.

참 많은 걸 얻게 되는 시간이다.
언젠가 영주권을 손에 얻게 되는 날 쓰게 될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뭐라고 다 표현하기가 어렵다.

간단하게 표현하면,
모든 일이 노력이나 간절함에 의해 결정되는 건 아니라는 것.
그리고 다른 사람과 비교하기 보다는 내 타이밍을 기다리게 되는 것.
이 시간이 없었으면 아마 절대 피부로 느끼지 못할 감정들이다.

세상을 바라보던 시각도 조금 많이 달라졌다.
나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도 어떤 틀에 의해 판단하지 않게 된 것 같다.
언젠가 시간이 조금 흘러서 이 시기를 보면 어떨지 궁금하기도 하다.

사람들이 쉽게 하는 말에 상처 받기 너무 쉬운 시간.
그래서 조심하는 법도 배운다.

나도 가끔 너무 답답할 때 다른 사람들의 타임라인을 보면서 안도하기도 하고, 위로받기도 해서 올려본다. 사실 다 케이스 바이 케이스라서 큰 도움은 안되지만 마음의 안도가 가장 큰 도움이 되는 시기가 있다.

좋은 소식으로 업데이트할 수 있길 기도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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