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설명이 필요한 시간
나이라는 게 자꾸 무언가 마음먹게 하는 마법이 있다.
요즘 영주권 인터뷰를 준비하다가
문득, 외부 요인에 의해서 정해지기 보다
내가 먼저 정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보니 10년 전,
내가 미국에서 살아야겠다고 마음 먹었던 때가 한국 나이로 27.
30이 되기 전에 외국에서 직장생활을 해봐야겠다고 생각했었다.
단순하지만 확실한 결정이었다.
물론 그 결정이 10년으로 이어질지 몰랐고,
부모님과 떨어져서 내 삶을 이토록 확실하게 책임져야 할 일인지도 몰랐다.
지금에서야 엄청난 결정이었음을 새삼 깨닫지만 그 땐 참 단순했다.
기회니까 잡지 머. 정도.
10년이 지난 지금,
이제 앞자리수가 바뀌어 37.
의미없지만 의미를 부여해보자.
내가 제일 좋아하는 숫자 37.
40이 되기 전에 또 새로운 걸 해볼 수 있는 타이밍.
뭐든 내가 의미를 부여하기 나름이니 기회다.
미국에서의 10년은 하고 싶은 거 최대한 해보는 시간이었다.
status가 어떻게 될지 몰라 불안정했기에,
무엇을 하든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했다.
‘언젠가 기회가 또 오겠지’라는 생각을 할 틈이 없었다.
의도치 않은 배수진 상황이랄까.
뉴저지에 살다가 언제 또 서부에 살아보겠나 싶어 캘리로 이사왔고,
돈이 없어서 냅다 3500마일을 혼자 운전해서 왔다.
온 김에 프로그래밍을 배웠고,
사진만 하다가 영상을 시작했고,
기계들도 신나게 설치해보고,
웹 관련 된 일들도 하고,
광고회사도 다니고,
사업도 해보고,
뒷통수도 호되게 맞아보고,
기타 등등 수없이 많은 것들을
하고 싶어서하기도 했고,
또 어떨 땐 돈이 없어서 했다.
가난하다는 것.
마음 놓고 기댈만한 사람이 없다는 것.
막막하지만 그래서 잃을 것이 없기도 하다.
가끔 돈이 넉넉했다면,
‘내가 하고 싶은 걸 시간 낭비하지 않고 했을 텐데.’ 라는 생각을 한다.
돈이 없어서 해야만 했던 것들이
언젠가는 돌아봤을 때 소중해지는 날도 있겠지.
37이란 숫자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었던 건,
어느날 저 37이란 숫자에 덜컥 겁이 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뭐했다고 숫자가 이렇게 높아졌지?
실패가 9할이고 운을 요리조리 피하기 선수지만 참 재밌었다.
직장경력도 이미 두자리수가 되었지만,
딱히 내세울 만한 경력이 있을까 싶다.
의도치 않은 N잡러로 꽤 다양한 일을 해본거 정도.
이 시절도 언젠가 설명이 되겠지.
나에게 주어지는 상황들과 그에 따른 결정들이 또다른 곳으로 데려다 주겠지.
매일 비슷하지만 새로운 하루니까.
영주권 인터뷰가 잡힌 이후로는 무서운게 많아졌었다.
두번째 인터뷰인데도 여전히 두렵다.
준비해야만하는 서류들를 준비하면서 마음이 어렵다.
아마 10년의 삶이 다 부정당하는 느낌인 것 같다.
하지말라는 거 안하고,
열심히 살았는데 그 시절이 어떤 단면들로 결정되어지는 무서움이다.
영주권의 결정권이 나에게 없지만,
그 결정 자체가 내 인생을 좌지우지 못하게 해야겠다.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건 ‘기대’
결과가 어찌되었든 내 인생에 늘 기대한다.
기대하는 마음은 내가 정할 수 있는 거니까.
운이라 말할 만한 건 거의 없지만,
덕분에 성실했으니까.
원하는 대로 살아지면 그게 인생인가.
시트콤 내 인생을 응원하고 사랑한다.
난 내년에 분명 다른 곳에 있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