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의 축복

뉴저지에 있을 때 친한 언니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

“동생아~ 너무 한사람한테 집중하지 말고 그 많은 사랑을 좀 여러사람한테 나눠줘봐!”

처음에 그런 이야기를 들었을 땐 조금 서운했다. 

같은 말이지만 난 이렇게 이해했다. 

“친한 사람들한테만 잘하지 말고 더 많은 사람들한테 나눠줘. 친한 내가 부담스러워.” 라고.

참 건강하지 않은 생각이었다. 그래도 그 말을 듣고 잠깐 마음에 저장해두었다. 

친하고 좋은 언니기에 나를 위해서 한 말이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 서운했지만 저장했다. 

그리고 1년하고도 조금이 더 흐른 지금. 

난 그 이야기가 어떤건지 거의 완전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이후로 사실 이런 기도를 했었다.

“하나님, 저에게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주세요. 그리고 누구나 사랑할 수 있는 사랑스러운 사람이 아닐지라도 하나님 마음으로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주세요.”

이 기도를 하게 된것이 꼭 언니가 한 이야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셀리더를 하거나 어떤 사역팀에서 사역을 할때마다 그 중에는 꼭 내 마음을 불편하게 만드는 사람들이 있었다. 

미워하게까지는 안되더라도 난 너무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구분이 명확해서 사역을 하기에 참 어려움이 많았다. 

그건 나에게도 참 힘들었다. 그래서 그런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사람은 잘 바뀌지 않는다. 기독교의 가장 명확한 기적은 사람이 변한다는 거다. 

많이는 아니지만 요즘 나의 놀라운 모습들을 발견한다. 

우선 누가 왕창 좋아서 확 다가가 친해지는 건 바뀌지 않았다. 

하지만 내 스스로 완급조절을 한다. 상처 받지 않기 위해 하는 완급조절이 아닌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으로만”할 수 있는 능력이 아주 조금 생겼다. 

그리고 누가 봐도 미운짓을 하는 사람이 여전히 나도 똑같이 별로다. 하지만 전처럼 밉지 않다. 게다가….. 그 사람을 위해 사랑스러운 사람보다 더 많은 기도를 하게 된다.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 시키신다. 

요즘 내가 하나님과 약속한건 “갑자기 떠오르는 사람이 있으면 3초든 3분이든 바로 기도할게요.”였기에 금방 하나님이 마음 주시는 사람을 알아챌 수 있다. 요즘 내가 빈도수 높게 기도한 사람들은 대부분 일명 “밉상”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의 상처들이 조금은 보이기 시작한다. 

내가 어떤 다른 사람보다 뭔가가 나아서 그 사람들보다 사랑받는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것들이 많아서 일명 ‘사회생활’이란걸 잘하게 된 것일뿐.

마음의 크기나 마음의 색은 내가 더 어둡거나 작을 때도 많음을 안다. 다른 사람보다 하나님께 많이 받은 게 있다면 그건 나를 위해서 누리라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나눠주라는 뜻이라는 이야기를 말씀을 통해 배웠다. 

이제 조금 컨셉이 잡힌다. 

여전히 성화되어가는 과정 속에 있지만 작은 변화들이 참 신기하고 감사하다. 

난 여전히 얼룩있는 작은 어린아이지만 ‘나’라는 것을 버리고 하나님 것으로 채울 때 난 완전할 수 있음을 믿는다. 

나 여호와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매일 매 순간 하나님이 하신 일들을 간증할 수 있길 기대하고 기도한다. 

우리 주님은 정말 참으로 스윗하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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