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를 대하는 만큼

나를 사랑할 수 있어야 남도 사랑할 수 있다.

나를 사랑해야 그만큼 다른 사람도 나를 사랑할 수 있다.

이 말이 나는 참 어려웠다.
남을 사랑하는 게 더 큰 사랑이라고 믿었던 시간들이 꽤 길었다.

하지만 몇 년 전 그 의미를 한번에 알게 된 대화가 있었다.

동료: 쿠키 유통기한 살짝 지난 거 있는데 버릴까요?

언니: 그거 KONG이 줘. 저번에 보니까 아무거나 잘 먹더라.

잠시 캐릭터를 설명하자면,
그 언니는 여러가지로 꽤 악명이 높은 사람이었다.
막말이 생활이고 회사 상사와 바람을 피면서도 당당했으며,
자신의 책임을 전가하는데 천재적인 재능이 있었고,
업무 능력은 현저히 낮았다.
경력과 나이로 군림하는 스타일.
음식이나 물건 등 누군가가 베풀었을 때 최고가 아니면 욕하는 스타일이었다.
덕분에 정말 좋은 거 아니면 그 언니한테 권하지 않았고 정말 좋은 것만 줬다.

작은 에피소드이면서 좀 특별한 케이스지만 난 그 날 이후 확실한 선을 지켰다.

그냥 남들이 하기 싫어하는 분위기가 싫고,
눈치보는 상황이 싫어서 먹기 싫은 것도 그냥 아무렇지 않게 먹었다.
‘내가 좀 희생하면 되지 머.’라고 생각했던게 그대로 나한테 와서 꼿혔다.
사실 사람들이 나빠서가 아니라 내가 나를 그렇게 규정해버리면,
자연스럽게 그런 이미지로 남게 되고 사람들도 선을 모르니
편하게 넘어드는 일이 생기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내가 나를 대하는 것을 보면서,
그만큼 혹은 그것보다 더 안좋게 대해도 괜찮다는 것을 느낀다.
스스로 인지하지 못할만큼 자연스럽게 그 생각이 들어간다.

결국 그 기준점은 내가 나를 대하는 만큼이 되더라는 것이다.

아무리 사람이 나쁘고 악해도 까탈스럽게 굴면 그만큼 사람들이 선을 지킨다.
누구나 갈등을 좋아하지 않으니까.

나를 지킬 수 있는 건 가장 가까운 ‘나’니까.

해결점을 찾는 게 나는 사회생활에 더 도움이 됐다.
특히 회사생활을 하다보면 유난히 못되게 구는 사람도 있고,
해맑게 피해를 주는 사람도 만난다.
또 중요한 건 내가 그런 사람이 될 때도 분명 있었을 것이다.
그럴 때 선을 그어주고 나에게 함부로 대하지 말라고 말해주고,
또 피해주는 부분을 담백하게 말해주는게 더 도움이 됐다.
물론 그렇게 한다고 다 해결 되진 않는다.
아무리 선을 긋고 이야기해도 안되는 사람이 있다.
그럼 그냥 내가 무시하는 수 밖에 없다.
그래도 그런 과정을 거치는 것과 처음부터 꾹 참았을 때와는 다른 느낌이 있다.

내가 경험한 것으로 다 규정지을 수는 없겠지만
사회생활을 하고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다보니 깨닫게 되는 것들이다.
나도 내 선을 지키고, 또 상대방의 선을 지켜주는 게 서로에게 참 좋다.

사람은 역시 관계 속에서 성장하고 배운다.
늘 피하고 싶지만,
혼자서는 내 자신을 파악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사회생활이 많은 생기를 내기도 하지만,
덕분에 지혜라는 근육도 생기는 것 같다.

Leave a Comment